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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 자연학, 유가, 공자 공부

분과학문체제에서 유학의 위상

분과학문 체제에서 유학의 위상

분과학문 체제에서 유학의 위상
분과학문 체제에서 유학의 위상

분과학문 체제에 있어서 유학의 위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는 고대에는 철학이 모든 학문을 가능하게 하는 즉, 학문을 학문이게 해주는 근거가 되는 측면에서 만학의 여왕, 만학은 모든 학문을 한자로 표현한 거죠. 그랬는데, 분과학문 체제가 등장하면서부터 철학이 그러한 특별한 지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대학에서 과목을 수강할 때쯤 되면 제가 다녔던 80년대나, 70년대의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철학이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고 그러고, 많은 대학 친구들이 철학과 과목을 듣거나 철학과에 기웃기웃했다고 그러지만 요즘은 철학 과목이 예전처럼 그런 인기가 없지 않습니까? 그게 분과학문체계가 되면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 중에 하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철학은 먼저 모든 학문을 관할하는 것이었는데, 근대에 이르면서 자연학, 물리학, 화학 이런 것이 분과를 해 나가게 되고, 또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것들은 심리학으로, 이렇게 하나하나씩 떼어지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철학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영역이라든지 방향이라든지 이러한 것들이 자꾸만 줄어드는 축소되는 그런 느낌이죠. 그래서 그것을 오늘날 본다면 이전에는 철학이 센터에 있었지만 지금은 철학이 센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학문이 중심에 있고 모든 다양한 학문들이 가지를 쳐서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께 새로운 『한서』? 예문지? 와 달리 사고전서(四庫全書)라는 또는 사고전서 총 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라는 책을 이때는 단일한 책이 아니라 일종의 전서라는 글자니까 책이 엄청 많겠다는 느낌이 드시죠? 이 책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근대의 분과학문 체제가 자꾸만 서양 위주로 되어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동아시아에서도 그런 분과학문 체제가 등장했어요 18세기 정도가 되면요. 그래서 보면, 이 사고전서, 사고전서 총 목제 요가 편찬되기 위해서 시작과 끝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1772년에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명령으로 우리 이거 시작하자. 해보자. 그러니까 그 당대에 있었던 모든 책들을 수집을 해서 그중에 좋은 책들을 필사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 22년간에 걸쳐서 한 책을 7질로 해서 일곱 군데의 서고에다가 배치를 하는 거죠. 그래서 규모로 보면 전체로는 3,600종이고 36,000 책에 79,000권 정도가 되는 건데요. 조선 정조도 사고전서가 편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하고자 했습니다만 이게 판매품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일곱 질을 완성을 해서 항주라든지 고궁이라든지 이런데 배치를 해두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일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그런 도서가 아니죠. 그래서 정조도 호학의 군주였지만 그런 사실을 몰라서 사고전서를 구입하고자 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대신에 고금 도서 집성을 들여와서, 이 고금 도서 집성(古今圖書集成)에 들어있는 기기 도설(奇器圖說)이라고 하는 게 화성 축조할 때 거중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준 책이죠. 그러니까 고금 도서 집성도 조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사고전서 총 목제 요는 뭐냐 하면, 사고전서라고 하는 것은 좋은 책을 필사하는 겁니다만 총 목제요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각각의 책의 요점을 정리하는 거예요. 요점을 정리하면서 또는 책 요점은 정리하지 않고 제목만 나열하는 그런 것도 있는데, 그러니까 도서를 포함하는 것을 보면 사고전서보다는 훨씬 사고전서 총 목제 요가 범위가 넓습니다.

사고전서 체제에서 분류

그러면 그렇게 많은 책들을 사고전서 체제에서는 어떻게 분류를 했을까? 그렇게 할 때 사고전서는 사부 체제라고 말하는데요. 그래서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을 사부(四部)라고 말합니다. 경부를 보면 모두 10류라고 되어있는데요. 여러분들이 아마 역, 서, 시 이런 부분은 많이 들어보셨잖아요? 효경까지는 들어보셨을 텐데, 좀 특이한 게 오경 총 의류(五經總義類)라고 해서, 오경의 어떤 뜻을 묶어보는 이런 책이 있고요. 사서류라고 해서 한서 예문지에서는 논어가 특별한 대접을 받았는데요. 청 나라 때쯤 되니까 사서라고 하면 논어, 대학, 맹자, 중용이지 않습니까? 네 책이 같이 주목을 받는 그런 특이한 점들을 알 수가 있고, 그다음에 소학류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부에는 또 모두 15류로 편제가 되어 있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몇 개만 살펴본다면요. 당연히 정사류가 있고 별사류가 있고 편년체가 있고 기사 본말 체도 있고 다양하게 있겠죠. 그리고 중분류라고 한다면 정사류 안에 개별적인 책이 다시 분류가 되는 것이 하위분류가 되는 거죠. 그래서 대분류, 중분류, 하분류 이렇게 삼단 분류가 되어 있고, 자부에서도 유가류라든지 법가류라든지 통상적인 것은 여러분 다 들어본 내용이 다 들어있는데, 모두 14류로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집은 문집인데요. 문집이자 문학의 특징인데요. 초사류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별집, 총집이 있고, 시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요즘 같으면 일종의 평론이죠. 그다음에 작품을 실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에서 사고전서 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도서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필사가 아니라 요점이라든지 제목만 쓰는 거니까, 사고전서 총 목제요 안에서도 경부, 또는 유가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에 이르면 한서 예문지처럼 유가의 위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분류하는 유 자체가 한서 예문지 칠략에 비해서 엄청나게 증가하고 그 중분류도 다양하게 늘어나죠. 물론 또 중분류가 늘어나면 거기에 있는 하위분류에 있는 개별적인 텍스트 종류도 훨씬 늘어나겠죠. 이렇게 보면 분과학문의 현상은 서양의 근대에서만 나타나는 것들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18세기에 나타는 거고, 아울러서 서학의 전래에 어떤 이런 것들이 학문 체계의 표준 규범이 되어서 유학은 더더욱 그 역할과 위상이 축소되는 그런 측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지금 현재 도서관은 당연히 서양의, 당연히라는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듀이의 십진분류법에 의해서 도서가 분류됩니다만 동아시아도 아무런 전통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나름의 전통을 가지고 도서를 분류하는 확실한 기준이 있었다. 이 정도는 여러분들이 한서 예문 지라든지 사고전서라든지 사고전서 총 목제 요를 통해서 기억을 해뒀으면 좋겠습니다.

종합학문으로서 유학

철학은 제가 고대에는 만학의 여왕, 만학은 모든 학문의 여왕이라는 뜻이죠. 어떤 것이 학문이 되려고 하면 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철학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거죠.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느냐"라고 물어보는 거죠. 이렇게 할 때 철학 자체 안에도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이렇게 나뉘지만 이때 철학이 중요한 것은 철학이라고 하는 게 나머지 학문들, 시학이라든지 자연학이라든지 경제학이 학문으로서 가능한가라고 하는 원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이 학문으로서 성립하게 끔 규제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철학은 학문 중의 학문, 학문의 여왕 다른 말로는 만학의 여왕, 또는 최고의 학문으로 불려지니까. 옛날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한테는 "아 옛날이여. "하면서 철학이 만학의 여왕이었던 시절에 대해서 향수를 많이 가지고 있겠죠. 그러면 공자라는 사람을 통해서 논어에 과연 논어가 유학에서 대표적인 것은 아시잖아요? 그렇다면 논어를 통해서 서양철학과 마찬가지로 만학의 여왕, 학문의 학문이게 하는 특징이 있을까? 즉, 논어를 보면 철학적, 사상적 내용만 들어있는 것일까 다른 내용도 있을까를 간단히 살펴보면요. 일종이 시학과 관련된 내용은 무엇인가 하면 공자가 시 300편을 모두 요약을 하면서 사무사라는 말을 하는데요. 어떤 뜻이냐 하면 시를 지었는데, 내용상은 저주하고 미워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결국은 사람들이 미워하고 증오만 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정화를 통해서 순수해지는 거기 때문에 그렇게 쓴다는 거죠. 이런 것을 통해서 시학의 내용이 논어에 들어있다는 것도 알 수 있고요. 공자 스스로도 보통 우리는 골방에 앉아서 먼지가 폴폴 나는 데서 도서를 뒤지는 것처럼 생각하겠습니다만 공자는 음악이라든지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요. 노나라에서 이웃 제나라로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순 임금의 음악인 소 음악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 실체가 남아있지 않아서 얼마나 감동적이냐는 것은 몰라요. 제가 중국에 여행 갈 때 순의 소악이라고 하는 시디를 샀는데요. 제목을 보고 샀는데, 그게 소악인지 아닌지 단정할 수는 없는데, 저는 아니라고 단정을 하죠. 소학이라고 쓰여있길래 사긴 샀는데요. 그 음악을 듣고 저는 공자처럼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공자가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는 것은 그만큼 감동적이었다는 거죠. 공자 스스로도 음악이라는 것이 나를 이렇게 만들 줄 몰랐다는 거니까.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독자적인 쾌감, 거기에 젖어들게 되면 우리가 잔상이라고 그래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이야기하고요. 또 정치학 이야기도 있어요. 사람을 이끌어 가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하는 데요. 하나는 행정 명령이라든지 형벌로, 사람들을 일종의 강제적인 방식, 약간 강압적인 방식. 그다음에 덕망이라든지 신뢰라든지 또는 상호존중의 예의에 따라서 이끌어 가는데요. 그래서 두 가지의 결과가 다르다고 봐요. 즉 강제적으로 하면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지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잘못했다고 해서 반성하거나 이러지 않는데, 덕성이라든지 상호 존중을 하면 반성해서 자기 스스로가 재발을 방지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또 경제학과 관련한 내용도 있는데요. 내가 무엇인가 가진 것이 적은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양극화, 극단화되는 것들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 된다라든지 가난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치안이라든지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한 것들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또 교육에 대해서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듯 알듯 한데 모르면 화나고 씩씩거리지 않습니까? 그런 친구가 아니면 알려주지 말고, 불비(不悱)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우리가 심하면 자기 입술을 때릴 때도 있잖아요? 말을 하고 싶은데 표현을 못 찾는 경우, 그럴 때 이렇게 하면 안 되느냐?라고 말을 해주는 거죠. 그러니까 학생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적극적인 자세가 없는데 선생이 미리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거고요. 또는 한 가지, 사각형 같으면 한쪽 모서리를 알려주면 학생이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세 모서리가 어떠한 것인지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는다라는 건데요. 이렇게 보면 공자는 학생이 자기 주도적, 요즘과 마찬가지죠. 자기 주도적인 어떤 도전 역량을 학습에서도 상당히 강조했다는 거죠. 이렇게 보면 논어에도 서양 철학이 고대 철학이 가지고 있던, 만학의 여왕이라는 지위와 마찬가지로 논어에도 보면 철학 사상 내용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학문으로 보면 다양한 학문, 교육학, 정치학, 시학, 예술학 등등의 많은 내용이 풍부하게 들어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