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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 자연학, 유가, 공자 공부

퇴계 - 마음의 병과 수양

퇴계 - 마음의 병과 수양

퇴계 - 마음의 병과 수양
퇴계 - 마음의 병과 수양

혈액을 공급하는 몸의 장기로서의 심장과 또 사유하는 주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서의 심, 즉, '마음'의 어원과 의미를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다루려는 '마음'이라는 말에는 신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 여러분도 떠올려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공자나 맹자를 이야기하면 조선시대를 풍미한 기득권에 이데올로기나 사상으로 떠올리기 쉬운데요, 사실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시대에 유학은 주류가 아니었고, 이들도 결국 춘추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군주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꿈을 실제로 펼쳐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린 세상이 먼 훗날, 조선이라는 나라에 전해지고 받아들여져서 500년 유교 국가의 기틀이 되었고,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오늘날 한국 문화를 형성하는 역사적·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맹자가 말한 '다름 아닌 잃어버린 마음'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수 있게 된 조선시대에, 한 사람이 유학의 이상을 실제 삶에서 구현해나가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을까요? 이번 차시에서는 유학과 한의학이 보다 직접적으로 만나는, 마음의 병을 중심으로,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놓인 인간에 주목하여보려고 합니다.

조선시대 선비 - 퇴계 이황

그러면 인의 씨앗을 담고 있는 사람다운 마음을 확충하는 삶을 인생의 목표이자 방향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고충을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 이 분이 누구신지 곧바로 알아차리셨나요? 네, 한국 유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 선생입니다. 우리가 천 원 지폐에서 자주 뵙는 분이기도 하지요. 퇴계는 특히 '경(敬)'을 강조하며 마음 수양을 중시하였고, 또 자신의 삶 속에 그것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평생 기울였던 분으로 당대에도 이미 학식과 덕망이 높았습니다. 현재까지 다수의 판본이 전해지는 퇴계 선생 문집에 보면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상당량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이 편지들 중에서 유학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노력 과정에서 겪는 마음의 병을 호소하는 담긴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의 병에 관한 편지

먼저 『퇴계전서』에 수록된 퇴계가 남언경에게 보낸 답서(答書) 중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자세히 읽어 보니, 근심하는 바 역시 우연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조섭과 치료는 진실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니, 모두 내가 평소에 몸소 겪은 것입니다. 심기의 근심은 바로 이치를 살핌에 철저하지 못하여 부질없이 캐어 억지로 찾고, 마음을 조존하는 데에 방법이 어두워 싹을 뽑아 올려 자라기를 돕듯이 함으로 인하여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정력을 소모하여 여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 역시 초학자의 공통된 병통입니다… 만약 이미 그것이 이와 같음을 알아서 단호히 고칠 수 있었더라면 다시 근심이 되지 않았을 텐데, 오직 일찍 알아 빨리 고칠 수 없었기 때문에 근심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평생 병통의 근원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마음의 근심이 예전 같은 데에 이르지는 않지만 다른 병이 심합니다. 늙은 까닭입니다. 그대와 같은 청년의 왕성한 기운으로 그 처음에 빨리 고치고, 조섭 하고 기름을 올바른 방법으로 한다면, 어찌 끝내 괴로움이 있겠으며, 또한 어찌 다른 증상이 끼어들겠습니까? … 치료의 처방은 그대가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가장 먼저 세간의 궁통이나 특실, 영욕이나 이해 등을 일체 도외시하여 그것이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추었다면 근심하는 바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 이미 그친 것입니다. 이렇게 하되, 무릇 일상생활에서 수작을 적게 하고 기욕을 조절하여 마음을 비우고 한가롭고 즐겁게 지낼 것이며, 그림이나 글씨 또는 화초에 완성이나, 냇가의 물고기와 산의 새를 보는 즐거음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생각을 즐겁게 하고 뜻에 맞는 것을 항상 접하기를 싫어하지 않아서 심기가 늘 화순한 상태에 있게 할 것이며 어긋나게 하거나 어지럽힘으로써 원망하거나 성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법이다…" 네, 퇴계가 젊은 학자에게 답장을 쓰며 그가 앓고 있는 심기 질환에 대해 조언하고 있는 내용을 볼 수 있는데요, 남언경은 양명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리학과 양명학 사이의 학문적 쟁점보다는, 물론 학문적 쟁점과 무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심기 질환의 처방으로 제시되고 있는 퇴계의 당부에 주목해보겠습니다. 즉, 지나친 욕심이나 조급한 성취의 추구 등을 경계하고, 일상에서 무리하지 말고 한가롭게 하여 마음의 기운을 조화롭고 순조롭게 다스리라는 것이었는데요, 퇴계의 편지에서는 남언경이 앓고 있는 병통이 길어짐을 걱정하면서, 심기 질환에 있어, 근본 치유로서 마음을 다스리는 처방을 보내는 퇴계의 진심을 볼 수 있는데요. 이 편지에서 언급되고 있는 남언경의 증상들은 흡사 현대인들이 겪는 스트레스, 번아웃 증후군의 증상과도 유사한 것 같습니다. 높은 이상을 품은 사람을 우리는 열정적이고 뜨겁다고 표현합니다. 잘하고 싶은 의욕과 과도한 책임감도 우리의 심장을 더 빨리 뛰게 만들고 많은 수고를 감내하도록 채찍질하지요. 오행론에서 심장을 화에 배속시키는 것도 바로 이런 특성과도 관련되는 것 같은데요, 열정은 인간다움에 성취의 동력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몸과 마음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억지로 성과를 내려는 성급한 욕심, 물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이 되거나, 이상의 실현을 향하는 무리한 상황 등이 누적되면 우리의 몸은 그만 균형을 잃고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몸의 신호와 증상 읽기의 중요성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수시로 몸의 신호와 증상을 통해 지금 나의 마음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퇴계가 말한 것처럼 미리 알아서 조절할 수 있다면 근심이나 병통으로까지 깊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퇴계는 이와 같은 마음 수양의 처방을 전하면서, 자신이 몸소 겪은 어려움이라서 잘 알고 있다고 거듭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퇴계는 70세에 돌아가셨는데, 당시로서는 장수한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 역시도 젊은 시절인 스무 살 무렵에 침식을 잊고 『주역』공부에 매진하다가 '이췌지질(파리하게 초췌해지는 질병)'을 앓게 되었고, 소재지는 질병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도 여러 심병 질환을 오랫동안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퇴계는 의학과 양생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실제로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유학자의 의사, 즉, 유의(儒醫)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퇴계의 문집에 보면, 친지를 위해 직접 약재를 수소문하여 구하거나 처방하여 권면하는 내용도 볼 수 있습니다. 퇴계의 의학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목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심신의 조화로운 수양을 통한 수기치인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앞서 살펴본 유학적 '마음' 개념에 이미 오래전부터 신체적. 정신적 요소가 모두 연결되고 포괄되어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스트레스와 관련되는 신체적인 질병인 심기 질환이나 심병에 있어서도 근본 치료로써, 먼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병은 이미 50~70%는 나은 것이라고 하는 퇴계의 견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적 수양을 근본으로 하라는 퇴계의 인문적 처방은 처방은 철학자의 관념적인 이야기일 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