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물치지란 무엇인가?
첫 번째로 우선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위기 지학(爲己之學)으로서의 유학은 자기의 수양을 바탕으로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수양하는 데에서부터 밖으로 남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여 누구에게나 화평한 세상을 이루고자 체계적으로 논한 책이 『대학(大學)』입니다. 주희는 『대학』을 '대인(大人)의 학'이라 하여 사서(四書) 중 가장 먼저 공부할 책으로 언급하였는데, 『대학』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至於至善)이라는 삼강령(三綱領)과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 정심(誠意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는 여덟 조목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격물치지는 사람의 뜻[情·意]을 기르는 수신의 요체이고, 평천하(平天下)를 이루는 근본으로서 앎[知]에 관한 일입니다. 즉 격물치지는 사(事)와 물(物)의 이치를 궁구 하는 것으로, 격물(格物)은 앎의 시초이고, 치지(致知)는 앎을 극진히 하는 것, 즉 극진히 미루어나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의 정심(誠意正心)은 실행[行]에 관한 일이며, 사(事)와 물(物)의 이치를 체득하는 것으로, 성의(誠意)는 실행의 시초이고, 정심(正心)은 그 실행을 극진히 하는 일입니다. 격물치지[知]와 성의 정심[行]은 순차적이면서도 분리할 수 없는 병립의 관계를 이루는데, 성의 정심은 격물치지를 우선으로 삼고, 격물치지는 성의 정심을 중하게 여겨서 격물치지가 정밀해지면 성의 정심은 더욱 능숙해지고, 성의 정심에 힘쓰면 격물치지는 더욱 확충되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사물(物)의 이치가 내 마음에 이르게 됨을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뜻이 절실해지고 마음이 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내 마음이 닦이면, 본래 밝았던 나의 덕은 더욱더 밝아져, 내 몸이 머무는 곳은 그 선이 극진해진다는 논리를 가집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사물의 이치가 이른 뒤에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지고 난 뒤에 마음이 바루어지고, 마음이 바루어진 뒤에 몸이 닦인다. …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평안해진다.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 國治而后天下平. ]”고 하는데, “천자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았다.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고 한 것입니다. 유학에서 배우는 자가 공부에 힘쓰는 요지는 자신에게 있는 선함[善]을 밝히고 몸[身]을 성실히 하는 것입니다. 선을 밝히는 것이 곧 나의 앎을 미루어나가는 것이어서, 치지(致知)의 문제는 마음에 온갖 이치를 밝혀서 내 마음에 의심되는 바가 없게 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의 정이와 주희(朱熹)는 격물의 '격(格)'을 '이른다 [至]'의 뜻으로 보고, '격물'을 '만물이 지닌 이치를 추구하는 것, 즉 궁리(窮理)'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주희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가면 앎에 이른다 [致知]'고 보았는데, 그에게 앎에 이른다는 것은 것은 이치가 사물에 있어 내가 아는 것을 미루어서 그 이치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저마다 갖추고 있는 그 이치를 하나씩 따져 들어가면, 마침내 그 이치를 확연하게 밝혀낼 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 그는 사람의 마음은 신비롭고 영험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하의 사물은 모두 그 이치가 있지만, 사람이 오히려 그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처음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배우는 자로 하여금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서 이미 아는 이치를 바탕으로 더욱 궁구하여 극진한 데에 이르는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하고, 힘을 쓰는 것이 오래되면 하루아침에 확연히 관통하여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한 것과 거친 것이 내 마음에 이르지 않음이 없고 내 마음 전체의 작용이 밝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이것이 사물의 이치가 이르는 것이라 하며, 이것이 지혜가 지극하게 되는 것이다. [是以大學始敎, 必使學者, 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 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 ]”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한 '활연관통(豁然貫通)'은 사물의 이치와 내 마음의 지식이 시원하게 꿰뚫리는 경지이며, 인간에게는 마음의 지각 작용과 능력을 전제로 하며, 인간의 마음이 외부에 있는 '사물에 직접 나아가서(卽物)' 그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窮理]으로써 각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격물치지는 내 마음에 각성하지 못한 부분이 없도록 하는 것이며, 활연관통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결국 격물치지는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는 내 마음의 앎을 완전하게 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격물치지를 통해 '내 마음의 앎이 극진해진다'는 것은 곧 '자기화된다'는 것이며, 격물의 지향과 방법에 따라 자기화되는 앎의 범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극진한 탐구 정신에 바탕을 둔 격물치지는 사물에 대한 확장성과 지향성을 가지는데, 이것은 미학적 세계로 전환할 수 있는 주재적인 면 또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론의 관찰태도와 격물치지
다음은 회화이론에 앞에서 알아본 격물치지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격물치지와 성의 정심은 병립하는 관계로서 분리될 수 없듯이 이 정신과 관계하는 회화 이론 역시 분리하기 어렵고, 회화 이론에서 반드시 '이것이 격물치지의 정신이다'라고 명시한 예는 드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창작과 비평에 관한 회화 이론, 또 예술정신을 논하는 데 있어 관찰을 전제로 하는 격물치지의 정신은 창작 대상에 대한 관찰 태도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예를 들며 알아보겠습니다. “화가가 실제로 대하고 있는 것을 헛되이 하면 크게 잃고, 마주 대하되 바르지 못하면 적게 잃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空其實對則大失, 對而不正則小失, 不可不察也. ]”라고 한 예도 있지만, 격물치지의 중요성이 가장 부각된 것은 중국 송나라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곽희(郭熙)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꽃 그리기를 배우는 사람은 꽃 한 줄기를 구덩이에 깊숙이 놓고, 그 위에 자리 잡고 내려다보면 꽃의 사면을 얻을 수 있다. 대나무 그리기를 배우는 사람은 대나무 한 가지를 취해서, 달밤에 의거해 하얀 벽 위에 그 그림자를 비추면, 대나무의 참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대체로 산천에 몸소 나아가 그것을 취한다면, 산수의 뜻이 보일 것이다. [學○花者, 以一株花置深坑中, 臨其上而瞰之, 則花之四面得矣. 學○竹者, 取一枝竹因月夜照其影於素壁之上, 則竹之眞形出矣. 學○山水, 何以異此? 蓋身卽山川而取之, 則山水之意度見矣.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화가가 산수에 직접 나아가서 대면하는 관찰 태도는 산수의 계절과 시간, 기후 등을 사실적 표현으로 가능하게 하고 이로써 감상자는 오히려 화가와 달리 산천에 직접 나아가지 않더라도 산수 속에 거니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격물치지의 태도를 중시한 사례
그림과 문학에 심취한 송나라 휘종(徽宗)이 선화전(宣和殿) 앞에 있는 여지(?枝) 나무에 열매가 맺힌 것을 보고 그 아래에 우연히 공작이 머무르자, 화원 화가들을 불러 그리도록 명하였는데, 모두 오른발을 들고서 돈대를 올라가는 공작을 그렸습니다. 그러자 휘종이 잘못 그렸다고 하며 “공작새는 높은 곳을 오를 때는 반드시 왼발을 먼저 든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화는 격물치지의 태도를 중시한 북송의 미적 취향을 보여주지만, 사실 사물에 응하여 모습을 그린다는 사혁(謝赫)의 화육법(畵六法) 중 응물상형(應物象形)을 구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응물상형은 소재 선택의 적합성, 그 소재에 대한 관찰과 묘사의 엄격함, 정확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화가의 관찰이 세밀하지 못해서 그림을 잘못 그리는 오류는 우리나라에도 나타나는데, 세종대왕께서 “무릇 사람이 어린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는 반드시 그 입이 절로 벌어지는 법인데, 이는 다물고 있으니 크게 잘못되었다. [凡人之食兒, 必自開其口, 是則含之, 大失畵法.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벌어진 입' 같은 것은 찰나에 나타나는 사람의 자연스러움 즉, 천연함인데, 이것을 놓침으로써 그 사람의 생동감 즉, 생기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사례들은 세밀한 관찰이 표현의 결과를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중국 북송대의 미불은 소식의 대나무 그림을 논하며, 불변의 이치 즉 상리(常理)를 논하였는데, “소식은 묵죽을 그릴 때, 땅에서부터 한 번에 꼭대기까지 곧장 그렸는데, 내가 왜 마디를 따라 나누지 않은가라고 물었더니, 소식이 대답하기를 대나무가 자랄 때, 어찌 일찍이 마디마다 따라 자라는가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생각은 맑고 빼어났다. [蘇軾子瞻作墨竹, 從地一直起至頂, 余問 何不逐節分. 曰竹生詩何嘗逐節生. 運思淸拔.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식이 만약 죽순일 때부터 대나무가 다 자랄 때까지 그 속성을 관찰하지 않았다면, 대나무는 마디의 수가 늘어나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마디들이 각각 길게 자라서 커졌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대나무는 죽순일 때 이미 다 자란 대나무의 마디가 그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랜 시간 죽순일 때부터 대나무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오랜 시간 대상 사물의 변하지 않는 특성을 관찰한 결과 소식은 묵죽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식 스스로 불변의 이치에 대해 말하길, “나는 일찍이 그림을 논할 적에 산과 들, 대나무와 나무, 물결, 안개와 구름에 이르기까지 비록 상형은 없지만, 상리가 있다. 상형이 잘못된 것은 사람들이 모두 이를 알지만, 상리가 타당하지 않는 것은 비록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 [余嘗論畵, 至於山石竹木, 水波煙雲, 雖無常形, 而有常理. 常形之失, 人皆知之, 常理之不當, 雖曉畵者有不之. ]”라고 했습니다. 알아본 바와 같이 깊이 있는 관찰과 이를 통한 화가의 체득은 주관적인 미적 판단을 병행하기 때문에 독창적인 표현을 이루게 하는 바탕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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