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중서의 기와 음양학
전국시대에 나타났던 추연의 자연학적인 관심과 성과를 한 제국이 등장하면서 가장 크게 이어받은 사람이 동중서(董仲舒)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동중서는 춘추전국시대에서 한 제국 초기에 까지 유학의 위상을 사실 줄어들고 줄어들어서 요즘 정치사로 비유하면 여당이라기보다는 야당에 해당되는 데요. 다시 유학이라고 하는 것들이 한 제국에서 부활을 하게 되는데 그게 두 가지 질문 때문에 부활을 하게 돼요. 하나는 진나라 제국이 무슨 잘못이 있기 때문에 진시황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통일 제국이 오랫동안 존속하지 못하고 망하게 되었는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인가?라는 것과 한 제국도 진 제국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등장을 하였는데, 즉 창업을 하였는데, 창업을 하고 나면 계속 창업이 아니라 수성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성을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라고 하니까 기존에 각광을 받았던 법가라든지 황로학을 대신해서 유학이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이때 동중서는 공자, 맹자, 순자가 했던 그 유학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거기다가 플러스를 합니다.
기의 바다
유학에다가 기를 플러스 하고, 음양을 플러스하고, 오행을 플러스 하고, 공양학을 플러스하는 등 새로운 유학을 만든 것이죠. 그래서 이런 것들이 밝혀지면서 동중서는 한 제국의 시대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유학자이자 또는 유학이 부활하게 된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 것인데요. 그때 동중서가 했던 큰 발견 중의 하나는 세계는 기의 바다라는 겁니다. 앞서 제가 기우, 기인 우천 하면서 좀 있다가 기 설명할 때 한 번 다시 말씀드린다고 했는데, 바로 여기입니다. 기인 우천에서는 물음은 있지만 답은 없어요. 하늘이 왜 갑자기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가?라는 물음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까라는 답은 명확하게 없었는데, 그때 점점 등장하는 기, 음양, 오행이라고 하는 것들을 동중서가 흡수를 해서 바로 이 세상에는 기가 넘쳐나 있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세상은 하늘과 땅 사이가 진공상태가 아니라 기에 의해서 꽉 막혀있다고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하늘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이로써 기인 우천에서 제기했던 물음이 실마리를 찾는 중요한 계기를 동중서가 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좀 파격적이니까 당대 사람들에게 어떤 비유를 하느냐면, 물고기를 봐라, 물고기가 물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도 기의 바다에 살고 있다는 이미지를 통해서 하늘과 땅 사이에 기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면 기와 기가 어떤 식으로 관계하고 반응하느냐라는 건데, 동중서가 한 말은 동유 상동, 동기감응인데요. 종류가 같은 것은 종류가 같은 것끼리 서로 모이거나 반응을 한다. 이런 뜻이죠. 우리가 소가 울면 소가 반응하고, 닭이 울면 닭이 반응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동중서는 동류 개념 또는 동기 개념을 집어넣어서 같은 기끼리 반응을 한다라고 말하는 거죠. 그렇게 보면 동중서는 어떻게 이 논리를 확장을 시키냐 그러면 사람과 하늘 사이에 기의 대응 관계가 성립한다라고 설명하게 되니까, 어떻게 보면 노자, 장자라고 그럴까요. 순자에 의해서 하늘과 인간을 분리하는 것들이 다시 역전되는 그런 현상이 한 초기에 나타났다고 할 수가 있겠죠.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정치가 안 좋다면 원망하는 기운들이 가득 차면 하늘이 재앙이나 벌을 내려서 시정하도록 한다면, 어떤 공정하고 안정이 된다면 조화로운 기운과 기쁜 기운이 넘쳐나고 하늘이 상서를 보내서 상을 주는 일이 일어난다라고 말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중서는 공로는 분명히 있습니다.
동중서의 공로
그 이전까지 기인 우천에 대한 대답을 못했는데, 기로 설명을 한다든지, 그리고 이 세상에 사물과 사물, 하늘과 사람 사이 관계를 설명할 때, 동기, 동류끼리 반응을 한다는 건데요. 그러나 동류 상황이 제가 예를 들었던 동물이라든지 물리적인 소리의 어떤 자연 영역에서는 긍정이 가능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어떤 거시적인 영역에서 감응이 100% 일어난다라고 하면, 그것이 과연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졌을까?라는 거죠. 그래서 동중서보다 좀 더 후대에 활약을 하는 왕충이라는 사람은 동중서의 동류 상동에는 자연물에서 있는 것처럼 합리적인 면도 있지만 하늘과 인간 사이의 원리에는 억지 논리가, 견강부회가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자연학은 늦게 등장했지만 전국시대의 추연과 한 제국의 동중서에 의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발전을 하고 그것이 한의학으로 꽃을 피웠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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