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병인론(病因論)과 양생, 동의보감
욕심이나 욕망으로 수고롭게 치닫는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기욕을 줄이고 심기를 화순하게 하고, 일상생활 역시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도록 한가함을 가미하여 조율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치닫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여유를 찾으려는 수양의 과정은, 곧 맹자가 말한 자칫 놓치고 살기 쉬운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가는 학문의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유학이 표방하는 학문의 도란, 자신을 지키고 다른 사람도 더불어 살리는 유학의 수기치인의 이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심기질환의 사례에 대입해본다면, 이는 곧 도덕과 생명이 서로 관련이 없거나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주역에서 말하는 살리고 살리는 생생의 궤도에서 같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의 씨앗을 싹틔우며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길과 생명을 보전하는 일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한의학의 병인론
한의학의 병인론, 즉 병의 원인에 대한 한 이론을 살펴보면서, 퇴계의 편지에서 보았던 마음 수양의 내용들이 신체적인 증상을 치료하고 병의 원인을 차단해가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의학이론이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이전에는 '감정, 마음, 정신'과 같은 개념들은 서로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활과도 떨어져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좌전』에서 병의 원인으로 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의미 있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 내용은 의화(의화는 춘추시대 진나라 때의 명의이죠)가 평공의 병이 여색을 절제하지 못함에서 생기는 번뇌와 질병이라고 진단하는 대목입니다. 의화가 신체적 증상이 있는 질환에 '절제'라는 인간의 의지 작용과 같은 수양적인 치료법을 제시한 것은, 의화 당시까지 만연했던 질병에 대한 귀신원인설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의학에 있어 인문적 자각이 드러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후 전국시대에 본격적인 의서로 등장한 『황제내경』에서는 질병의 발생요인을 크게 생활습관, 환경기후, 정신현상 등으로 구분합니다. 생기통천론에 보면 스스로 자신의 기를 손상시키는 것을 '자상(自傷)'이라고 하여, 병의 원인으로 내면적인 요인(內因) 또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주요의서로 등장한 『상한론(傷寒論)』, 『금궤요략(金匱要略)』 등이 주로 외감(外感)에 치중하고 있어 과도한 감정이나 정신(神)의 이상과 같은 내적인 요소에 대한 기술은 미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 심리와 같은 내적 요인과 병의 관련성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사상사와 궤를 같이하여 의학에서도 역시 송대(宋代)에 이르러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특히 진무택(陳無擇)의『삼인방(三因方)』에 의해, 감정과 같은 내적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질병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여겨지게 됩니다.
질병의 세 가지 주요 원인
삼인방은 질병의 세 가지 주요 원인을 의미하는데요, 즉, 내인(內因), 외인(外因), 불내외인(不內外因)을 말합니다. 내인은 안쪽, 즉 인간의 생활 습관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식습관이나 음식으로 인한 음식상(飮食傷),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긴 노권상(勞倦傷), 감정, 스트레스로 인한 칠정상(七情傷), 과도한 성생활로 인한 방노상(房勞傷) 등이 있습니다. 외인은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를 요소로 하는 날씨와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인체에 영향을 미쳐서 병의 원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불내외인은 말 그대로 사고와 같이 내인과 외인에 포함되지 않는 병의 원인들을 포괄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삼인방을 기점으로 금원대(金·元代) 유명한 의학자인 이동원(李東垣) 등에 의해서 정신적 원인이 주요하게 작용하여 내상병(內傷病)이 형성된다고 보는 내상학설(內傷學說)이 발달하고, 주진형(朱震亨)의 상화론(相火論) 등에 의해 내상과 관련한 병리적 기전 연구가 심화됩니다. 송대 의학의 특징은 '유의(儒醫)'의 등장이 활발해진 사회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송명(宋明) 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들의 병인론(病因論)이나 내상학(內傷學) 등은 유학의 수양 이론과 상당 부분 접점을 가지게 됩니다. 이 송대의 사상은 조선 성리학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죠.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내면, 마음에의 관심과 탐구는 의학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내상에 대한 관심으로 깊이를 더해가게 됩니다.
동의보감 - 수양과 양생
조선의 유학은 이후 중국사상사의 전개와는 또 달리 인간의 내면과 감정, 마음의 문제에 더욱 오랫동안 천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 선두에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퇴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퇴계 사후이긴 하지만, 퇴계와 비슷한 시기인 1610년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서가 발생됩니다. 네, 바로『동의보감』입니다. 이번 차시에서는 동의보감의 특징적 체계와 양생론을 통해 앞에서 살펴본 퇴계의 사레와 접점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2009년에 유네스토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선정한 동의보감은 일종의 의학 백과사전으로 기존의 수많은 의서들에 수록된 내용을 동의보감만의 편제에 맞추어 수정하고 종합하여 일목요연하게 편천한 의학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 들어간 '동의(東醫)'라는 이름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세우겠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이 동의보감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어쩌면 그 편제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동의보감은 신체 내부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내경편』을 첫 순서로 배치해서 내면과 생리에 대한 원론적인 관심을 우선하여 정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특징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당대의 학풍과 조선성리학의 특징인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과도, 같은 경향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구가 지은 동의보감의 서문을 보면 질병의 섭생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에 근본 원인이 있으며, 따라서 수양을 우선하고 약물은 그 다음이라고 하는 선조의 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수명의 차이'를 보면, 일상에서의 절제와 조화의 추구를 우선하는 양생을 강조하는 내용들을 볼 수 있는데요, 여러분 이런 특징이 드러나는 사레를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요? 네, 우리가 이전 차시에서 살펴보았던 바로 퇴계가 남언경에서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도 바로 마음 수양과 신체적 치료를 하나로 보는 견해를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유학에서 추구하는 도덕적 삶과 한의학의 생명의 길이, 수양과 양생을 통해 접점을 찾아가면서 통합적으로 추구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의학의 병인론의 흐름에서 내상학의 발달과, 동의보감에서 수양을 우선하며 양생을 중시한 것은, 건강의 유지에 있어 몸과 마음을 통합적으로 여기는 심신일체론적 관점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통합적인 인간이해는 현대사회의 정신적· 신체적 질병에 대한 유기적 접근과 일상적 치유의 노력에도 여전히 의미있는 관점을 제공한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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